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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五色의 꽃, 채송화/박현웅
HIT : 93 WRITER : 운영자 DATE : 18년10월08일 05시43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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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-五色의 꽃, 채송화/박현웅- 1 누님의 화단에는 오색의 꽃을 가득 피웠고요. 어머님의 가장 성스러운 장독대에서는 족두리 같 은 씨방이 검은 속내를 터트리고 있었지요. 꼬물대는 꽃술이 조화로워 마주하고 앉았는데 아! 글 쎄, 도톰한 줄기가 나를 향하며 고추 보인다고 놀리는 거예요. 냅다 물 호스질을 해댔지요. 여우 와 호랑이가 결혼하는 날처럼 화단에서 장독대까지 무지개 뜨고요. 혼기 넘긴 누님 시선에 노을 이 자꾸 걸려요. 뒤꼍 장독에는 군대 간 형님을 위한 정화수 올려 지고요. 하루살이 혼인비행의 군무가 한동안 솟구쳐요. 조용하신 아버지의 뽀얀 담배 연기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화단 위에 한 참을 머물러요. 꽃잎이 문을 닫는 저녁이 오면 우리는 몽우리를 하나씩 가슴에 숨기고 찬물에 얼 굴을 헹궈냈지요. 2 초저녁에 방 한 귀퉁이로 꺼졌던 한숨이 빛의 눈물처럼 지붕 위에 떠있다. 아직 어린 내 나이와 는 거리가 먼 달. 모른 채 돌아누워, 꾹꾹 눌러 참던 아버지의 근심이 더욱 창백하게 부어오르는 밤. 이불에 수놓아진 꽃무늬가 우리들의 가슴 깊숙이 수천 개 바늘을 꽂는다. 암흑 속에서 통증 의 부력으로 터져 나오는 오색의 꽃. 쓴 속내가 새나가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의 입을 줄기로 묶 고 늑골이 하얗게 세도록 뭉게뭉게, 몽우리를 흔들며 푸르게 멍드는 입술을 견뎌낸다. 지붕까지 밤안개가 차오르자 아버지의 허기진 눈물이 퇴화된 날개를 퍼드덕거렸다. 새까맣게 속을 텅 비 운 깃털 하나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핑그르르 아득한 손을 저으며 사라진다. 어디쯤에서 마른 울음으로 바스러질 것인가. 아버지가 눈물을 뒤척일 때마다 짓무른 웃음이 우리의 뺨을 타고 흘 렀다. 이불 가득 축축한 얼룩이 가득하였으니 어머니, 해가 뜨면 간밤의 홑청을 뜯어 너른 볕에 통증을 말렸다. 아침은 그렇게 왔다. 그러나 우리들 입술의 푸른 멍은 저녁이 돼서야 붉게 돌아 왔다. 3 나이가 들어도 누나의 간질증은 낫지 않았다. 오가던 혼사가 거품을 물고 쓰러진 그해 겨울 방 학, 아예 말을 놓아버린 누나를 데리고 부모님은 용한 사람이 있다는 강원도 먼 산속으로 잃어버 린 말을 찾아 떠났다. 나는 아무도 모르게 홀로 사시는 동네 할머니에게 맡겨졌다. 겨울 내내 낯 선 냄새에 섞여 살았다.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밥 흰 비린내가 싫었고 무른 김치 숨죽은 냄새도 싫었다. 숨이 턱턱 막히게 달라붙는 사람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를 그때 알았다. 어떻게 숨을 쉬며 그 역겨움을 버텨냈는지. 그렇다고 나를 잠글 수는 없었다. 얼음장 위 찬 공기가 약간씩 흔 들리기 시작했다. 뿌옇던 겨울은 결국 죽은 가지들을 부러뜨리며 녹아 흘렀다. 아직 봄이 오기 전, 부모님과 누님은 살얼음의 발자국을 피해가며 어스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. 아, 익숙한 냄새 에 빈 집의 한기는 사라지고 나는 지워질 듯 아버지에게 매달렸네. 그런데 왜 그때 우리는 침묵 을 지키려 애썼던 걸까. 한동안 가물가물하게 우리를 다스리던 것은 외진 곳에서 묻어 온 향내라 는 걸 며칠 뒤에야 알았다. 누나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간간히 웃음을 보여줬고 부모님은 누나를 살피느라 눈칫밥을 먹던 날들. 우리들 침묵의 결속은 완연한 봄볕 속에서도 풀리지 않았 다. 내 유년의 절실한 굶주림은 아직 낯선 희망 속에서 절망을 보편화하는 것이었다. 4 남들 눈치는 보지 않았다. 우리는 서로 가족들 눈치 보기에도 벅찼으니까. 더 이상 뒷걸음 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은 무의미해졌다. 어제도 오늘도 심지어 미래마저도 빤히 보이니까. 다 만 공간만 존재할 뿐, 눈치 보기가 일상이 된다는 일은 나를 포기한다는 일이며 가족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.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쌓인 시간의 둔덕에 갇혀 살았다. 아무도 오려하지 않았고 무엇 하나 잡히는 것 없이 주르르 넘어지는 그 너머를 가족 누구도 궁금해 하지 도 않았다. 모래알들의 시간이란 얼마나 자유롭고 여유로운가. 멈춰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 사람은 군대를 제대한 형이었다. 그러나 형은 잠시도 집에 있지 않았다. 새벽안개를 가르며 들로 나가 컴컴해져야 어둠을 헤치며 불쑥 들어왔다. 우리 누구도 그런 형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 다. 첫 예비군 훈련을 받기도 전에 허옇게 변한 푸른 군복, 형도 이제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다. 형을 여기까지 버티게 한 것은 희멀건 막걸리였지만 실은 가족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. 내 눈치는 포기와 확신 사이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쳐져있는 예민한 불안이다. 5 먼 높이에서 동네를 내려다보았다. 모퉁이에 걸린 우리 집을 이끼들이 뒤덮고 있었다. 항상 굶 주려있어야 죽지 않아, 뿌리를 갈라주는 것도 굶주림이니까. 우리 집에서 나온 한 사내가 두리번 거리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다. 낯선 얼굴에 익숙한 침묵, 눈빛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었다. 둘을 얽어매고 있는 이 어색함이 서로에게 오랜 구속이길 바랬다. 누나를 시집보내기 위해 한동 안 온 집안이 들썩거려야 했다. 그날 우리 가족은 모두 한쪽 방향으로 쏠려있었다.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부재였을까, 아니면 빈틈이었나. 결혼식장 누군가 박수를 치기시작 했고 튕겨지듯 우 리들 빈 손바닥 사이에서 가볍게 뿌리 하나가 떨어져나갔다. 그리고 이듬해엔 형님이 튕겨져 나 갔다. 그 사이에 크게 두 번을 더 울었다. 어떻게 눈물이 꽃으로 피어나는지, 그 참담했던 세월을 의심하면서 또한 자화상임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. 나도 이제 클 만큼 다 컸다. 어떠한 아름다움도 더 이상 내 삶을 조롱하지 못할 것이다. 내 슬픔은 나보다 먼저 죽은 믿음이 낳은 괴로움이다. -詩 전문 계간지『포엠포엠』2015년 봄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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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여름을 건너간 슬픔/최해돈
 책의 묘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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